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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2010. 3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18:28-40)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18:28~32)
 
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3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빌라도의 재판(18:33~40)
 
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39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40 저희가 또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관찰과 해석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모순된 모습으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준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바라는 강도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길 원했다. 그들은 끝내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게 되고 이 결국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된다.
  항상 첫시작은 그 뒤에 따르는 전체를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예수님께선 십자가에 못 박히기전에 많은 이적을 일으키신다. 그 이적에는 병고침, 치유, 회복 그리고 부활 등 많고 다양한 이적들이 있었다. 이 이적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작은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해 주셨고 그가 전하셨던 복음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이룩하기 위해선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깨우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본질상 죄인이기에 절대 경험할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진정 사랑과 계획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할 수 있다. 십자가 사건은 그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 가장 먼저 구원받은 자는 바라바라는 강도였다. 처음이 중요하듯이 바라바 역시 우리에게 중요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바라바는 강도였다는 것과 본래 십자가에 죽어야 할 자는 바라바 였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선 바라바의 죄를 대신 십자가에 지신 것이다.
  죽어야 할 인생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 것이 십자가 사건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은 강도 바라바였다. 우리의 본질은 바라바라는 강도와 같은 죄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드러나냐, 드러나지 않냐가 우리의 겉모습을 결정하진 않을까? 본질상 죽어야할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더이상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생명의 역사다. 그리고 이 생명의 역사를 통해 진정 많이 변화된 자가 바로 나 자신임을 기억하길 소망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더 기억하는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18:28~32)


안나스가 부당하게 예수님을 밤새도록 심문했지만 아무 죄도 찾지 못하고 가야바에게 보냅니다. 가야바는 이른 새벽에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빌라도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면 유월절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유월절을 완성하러 오신 어린양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섰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그들은 오로지 형식적인 절차에만 힘쓴 것입니다. 죄 없으신 분을 행악자로 정죄하고 고소하면서 자신들이 정결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종교 의식에 대한 열심과 헌신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으로 그분을 닮아 갈 때 우리는 정결하고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본질을 놓치고 형식에 치우치는 경향은 주로 언제 나타납니까? 바른 일에 열심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와 자질이 필요합니까?



빌라도의 재판(18:33~40)

빌라도가 심문하는 중에 예수님이 왕이심을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그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심을 간접적으로 선언하십니다. 빌라도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묻자 예수님은 “내가 왕이니라”라고 명백하게 밝히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보여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재판장이 되어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로마 총독에게 재판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모든 수욕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내 삶의 진정한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주권이 내 삶을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