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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2010. 3

예수님의 수난 예고 (시편 22:1-11)

하나님을 향한 탄식 (22:1~5)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5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악인들의 조롱과 비웃음 (22:6~11)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관찰과 해석
  다윗의 찬양시이다.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난이까... 이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백하신 말씀과 같은 구조의 말씀이다. 나를 버리신 것만 같은 하나님,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은 하나님. 절대 응답이 없으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시편기자는 경험하고 있지만, 그는 분명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고, 그 신음소리를 듣고 계시고, 응답주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자였다. 그리고 자신의 비천함, 나약함을 고백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니다.
  지금의 모습이 왠지 비참하다고 느껴지는가? 악인들의 조롱이 되는 것 같은 느낌.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맘 상하고 눈물 흘리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지만, 현재의 내 처지를 생각할 때 비참하게 느껴지는 건.. 왠지 시편의 기자와 상황은 다르지만, 그 처지는 같다고만 느껴진다. 언제까지 이런 비참함 가운데 눈물만 흘리고 있을 것인가? 언제까지..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것을 수모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그 어떤 누구도 지금의 내 모습을 해결해 줄순 없다. 다른 사람의 위로로도 안되며, 내 자신의 세뇌로도 절대 이를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이기게 하실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지금 나에겐 그 어떤 누군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분만 필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탄식 (22:1~5)


시편 22편은 시인이 온갖 핍박과 수난 가운데 겪었던 고통을 토로하면서 구원을 호소한 비탄시입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예언한 메시아 예언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용하셨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 하나님의 응답을 거절당한 자의 절망적인 심정을 구구절절 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구원하셨던 과거를 떠올리며 부르짖어 보지만, 여전히 어떤 음성도 들려오지 않고 어떤 도움의 손길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홀로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심정을 우리에게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라고 외치실 때 그 심정이 어떠셨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아픔이 느껴집니까?



악인들의 조롱과 비웃음 (22:6~11)

시인은 자신이 당하는 조롱과 비웃음을 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 사람들에게 얼마나 심한 모욕과 멸시를 받았는지, 시인은 자신을 벌레로 지칭하는 극단적인 은유를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시인을 보며 비웃고 머리를 흔들면서 조롱합니다. 심지어 시인의 믿음까지 비웃습니다. 시인의 믿음을 비웃는 이 조롱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들으신 것과 동일합니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마 27:43). 그래도 시인은 하나님만 의지하며 도움을 구합니다. 이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간구하셨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간구하신 주님의 신뢰를 연상시킵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주님을 신뢰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