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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2010. 3

요나의 자기 생각 (요나 1:11-17)

요나의 고백과 결단 (1:11~12)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주님 뜻대로(1:13~17)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관찰과 해석
  하나님의 계획은 요나가 물고기 배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요나에 대해 세운 계획이시다.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동안 있는 다는 것은 어찌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그런 방법을 통해서까지 요나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귀하게 생각하셨음을 알 수 있다.
  요나는 바다에서 만난 큰 폭풍이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함을 감지했다. 그것은 요나의 영적 민감성을 나타낸다. 요나는 그만큼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함이 있었으며, 무엇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경험하는 상황과 환경을 주시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자신이 원하는 길로 행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려놓으라고 주신 사명 앞에서 사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순종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폭풍이라는 시련이 주어졌을 때, 그리고 그 자신이 자신으로 인해 발생되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 시련으로 인해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갔을 때 요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나님을 잠시 피하고 싶었던 요나였다. 그리고 그 피하는 순간은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갈등과 싸움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심리적은 압박은 오히려 요나를 깊은 잠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은 인간의 마음이다. 
  요나는 자신으로 인해 폭풍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깨닫은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나는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요나는 결국 순종을 포기한다. 그리고 더이상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결국 자신이 바다위에 있는 배에서 떠나 바닷 속으로 던져지길 소망했다. 이것은 자살과도 같은 행동이다. 결국 그는 죽기까지 하나님의 사명에 순종하길 거부했으며, 자신이 바다에 던져짐으로 이 환경을 피하고 싶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요나였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까지 각오한 불순종을 저지른다. 그것은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보다 자신의 생각, 가치관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요나가 그렇게까지 불순종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선 끝까지 요나에게 순종을 강요한다. 요나와 하나님과의 팽팽한 접전이다. 하지만 이 관계에서의 승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선 요나가 바다에 스스로 던져질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고, 그 안에서도 요나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요나와 개인적인 만남을 갖기 위해서 물고기를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에서 이뤄지는 과정들이다.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스스로 주관하는 삶이 절대 될 수 없다. 사람이 자신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삶의 모든 과정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선 끊임없는 계획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그렇게까지 붙잡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요나의 관점으로 봤을 땐 정말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봤을 땐 그것은 사랑이었다. 우리의 영혼이 지칠때가 많다. 그리고 더이상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하는지도 모를때도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요나와 같은 삶의 모습이 항상 드러나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 요나에게 다가가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사랑을 말씀하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삶 가운데 마음의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비록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도받고 있음을 깨닫고 기억하고 느끼는 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니느웨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1:1~2)


요나서는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책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사람에게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요나서는 그런 사랑의 하나님을 잘 보여 주는 책입니다.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인간이 얼마나 쉽게 오해하며 사는지를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긍휼의 하나님은 악이 가득 찬 니느웨 성읍에 사는, 세상의 악에 완전히 물들어 버린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요나 선지자를 세워서 직접 파송하실 정도로 니느웨를 향한 긍휼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풍성하신 긍휼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긍휼이 얼마나 큰지 묵상해 보십시오. 죄인을 향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을까요?



소명을 저버린 요나 (1:3~10)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순종해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습니다. 소명을 저버린 요나로 인해 배에 탄 모든 사람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는 것을 흔히 소명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가진 소명자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 곧 우리 모두의 소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르셔서 니느웨라는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소명을 거부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거룩한 소명에 기쁘게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까?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