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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2010. 5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예레미야 11:18-12:6)

아나돗에 대한 심판 예언 (11:18~23)
 
18 여호와께서 내게 알게 하셨으므로 내가 그것을 알았나이다 그때에 주께서 그들의 행위를 내게 보이셨나이다   
19 나는 끌려서 잡히러 가는 순한 어린 양과 같으므로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과실을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 이름으로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 함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를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21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22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청년들은 칼에 죽으며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23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돗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곧 그들을 벌할 해에니라 
 
선지자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12:1~6)
 
1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2 주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3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4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사오니 이는 이 땅 거민이 악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그가 우리의 결국을 보지 못하리라 함이니이다  
5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6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찌라도 너는 믿지 말찌니라 


아나돗(Anathpth)
예루살렘 북쪽 4.8km 지점
(1) 베냐민 지파의 지경중에 레위 지파를 위하여 할당된 48개 성읍중의 하나(수 21:18).
(2) 솔로몬은 다윗의 사후에 왕위를 노렸으나 실패한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아비아달을 아나돗으로 축출하였다(왕상2:26).
(3) 예레미야의 고향이었고 처음으로 예언한 곳이다(렘11:21).
(4) 바벨론의 귀향 후에 느헤미야 통치 때에 많은 사람이 거주했다(느11:32).
(5) 시글락에서 다윗에게 가담한 다윗의 용사 중의 하나인 아비에셀(삼하23;27)과 예후(대상12:3)은 아나돗 사람이었다.

 관찰과 해석
  이미 무너진 유다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선 예레미야 한 사람을 택하여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신다. 하지만 예레미야에게도 이런 믿음의 모습에서 시험이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하면서 항상 궁금해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기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있어서 예레미야 역시 동일한 질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믿음은 그러한 모습 속에서도 분명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나타날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예레미야에게 방해가 되는 몇몇 요소중에는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 그의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하는 모든 부분은 정확하다. 비록 인정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선 예레미야를 온전히 사용하시고 인도하시는 모습이다. 이미 영적으로 무너진 유다와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모습, 그리고 멸망 이후 다시 회복이라는 관점으로 유다를 회유케하는 예레미야의 모습을 보면서 비록 그 과정 가운데 예레미야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하나님의 일이기에 그의 모든 열정과 헌신을 드리는 삶을 보며, 그러한 삶이 내 안 가득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나돗에 대한 심판 예언 (11:18~23)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언약 위반과 심판 메시지를 선포함으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종교인들뿐 아니라 아나돗 사람들까지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는 날에는 죽이겠다며 위협했습니다.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입니다(1:1). 아나돗은 핍박의 때에 예레미야가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지였기에 그의 상심은 매우 컸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 양에 비유했습니다. 또 그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당하는 고통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주의 보수’를 보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나돗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인은 축복에 대한 메시지뿐 아니라 징계에 대한 메시지도 열린 마음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과 형통의 말씀이 아닌 훈계와 책망의 말씀을 주실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불평하고 원망합니까, 받아들이고 회개합니까?



선지자의 질문과 하나님의 답변(12:1~6)

악한 자가 번창하는 것을 볼 때 신실한 성도의 마음은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예레미야는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며 마음은 그분에게서 먼 악한 자들을 벌하시기를 탄원했습니다. 그는 도살할 양을 끌어냄같이 그들을 끌어내시고 죽일 날을 위해 구별해 두시라고 함으로써 도살장에 끌려가는 순한 어린 양의 비유(11:19)를 악인들에게도 적용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보행자(동족)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바벨론)과 경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장차 더 힘든 일이 닥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실로 바벨론 군대가 요단 강을 건너올 때는 예루살렘뿐 아니라 온 땅이 황폐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현재뿐 아니라 먼 장래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이 의롭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악인의 형통을 보며 하나님이 계신지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악인의 형통을 어떤 가치관으로 바라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