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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2010. 5

자연 현상을 통한 경고 (예레미야 14:1-12)

가뭄을 통한 경고(14:1~6)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3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6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하나님의 심판 의지(14:7~12)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찌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찌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관찰과 해석
  하나님 보시기에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미 어그러진 모습이다. 그들에게 그토록 회유를 권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그들의 예배는 형식이 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었고, 이미 그들 마음 속에는 하나님보다 더 많은 우선순위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로만 가득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이미 어그러진 길로 가고 있었으며, 그들의 죄는 더이상 되돌릴 수 없었다. 하나님께선 요나를 통해 니느웨를 멸망시키겠다는 말씀에 니느웨가 회개함으로 그 멸망함을 피할 수 있었던 것 처럼 이들 역시 회개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는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저벼렸기에 그런 회복의 역사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그들에게 회개는 전혀 다른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나님께선 그런 유다를 위해 복을 구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중보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선 지금 유다의 중보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들의 형식적인 금식, 부르짖음, 번제와 소제 등 하나님께 드리는 형식의 예배 모두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미 그들의 모습 가운데 진정한 예배의 모습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이런 형식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지 다시금 되돌아 보길 소망한다. 진정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나아감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을 사랑해야하고, 그러하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온전히 드려야 하는 것이다. 유다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계속적으로 사랑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생각하며, 진정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생각하는 하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가뭄을 통한 경고(14:1~6)


자연재해는 때로 하나님의 심판 예고입니다. 바벨론의 침략이 임박한 때, 유다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예레미야는 가뭄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상황을 상세히 묘사합니다. ‘귀인’과 ‘밭 가는 자’는 모든 사회 계층을 대표하며, ‘들의 암사슴’과 ‘들 나귀’는 모든 짐승을 대표합니다. 사람들은 물을 얻지 못하고 땅은 먼지투성이가 되며, 밭 가는 자는 소득을 거둘 수 없습니다. 가뭄으로 인해 암사슴이 새끼를 내버리고, 들 나귀가 숨을 헐떡이며 눈이 희미하고 흐려진다는 표현은 재앙이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가뭄이 우연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언약을 파기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도는 자연 현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 눈에 보이는 우연이 하나님께는 필연임을 알고 있습니까? 자연 현상뿐 아니라 삶의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합니까?



하나님의 심판 의지(14:7~12)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요 환난 때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을 따라 예레미야는 극심한 고통에서 유다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비록 유다 백성의 타락과 부패로 인해 모든 소망이 사라졌으나, 그는 언약의 신실성에 초점을 맞추고 유다를 버리지 마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을 위해 기도하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이는 백성이 어그러진 길로 행하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금식’, ‘번제’, ‘소제’도 받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드리는 모든 행위가 순종과 진실한 마음이 없는 종교적 형식만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참된 회개 없이는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돌이킬 수 없습니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유일한 소망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까? 여전히 죄를 버리지 않으면서 기도 응답만을 기다리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