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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2010. 7

자유를 빼앗은 백성의 결말 (예레미야 34:12-22)

변심에 대한 책망(34:12~16)

 
12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13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희 선조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워 이르기를   
14 너희 형제 히브리 사람이 네게 팔렸거든 칠 년 만에 너희는 각기 놓으라 그가 육 년을 너를 섬겼은즉 그를 놓아 자유케 할지니라 하였으나 너희 선조가 나를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느니라   
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목전에 정당히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하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서 내 앞에서 언약을 세웠거늘   
16 너희가 뜻을 변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고 각기 놓아 그들의 마음대로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너희에게 복종시켜서 너희 노비를 삼았도다
 
언약을 어긴 대가(34:17~22)
 
1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듣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하여 너희를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열방 중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18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 그 말을 실행치 아니하여 내 언약을 범한 너희를   
19 곧 쪼갠 송아지 사이로 지난 유다 방백들과 예루살렘 방백들과 환관들과 제사장들과 이 땅 모든 백성을   
20 내가 너희 원수의 손과 너희 생명을 찾는 자의 손에 붙이리니 너희 시체가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식물이 될 것이며  
21 또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을 그 원수의 손과 그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붙이리라   
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 성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 성읍들로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

 관찰과 해석
  유대의 마지막의 모습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숭배와 서로를 이익의 관계로만 생각할 뿐 전혀 하나님이 사랑이 드러나지 않은 모습이다. 서로를 잡아 노비로 만들어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송아지를 잡아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지 않는 모습은 유다의 조상이 하나님을 섬겼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유대는 조상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었고 자신의 민족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머리로만 알 뿐 진정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세대였다. 
  이 당시 시대의 유대와 예레미야를 비교하더라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자였던 반면, 유대는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조상과 다르게 마음이 변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함에 대한 그 근본은 하나님을 인생가운데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경험했다 할지라도 그들 자신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었기에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이다. 믿음은 단순히 행위적인 것이 아니다. 지,정,의 이 모든 것이 믿어야지만 진정한 믿음이다. 머리로는 알지만, 선포할 수 없는 것, 믿음에 대해 선포할 순 있지만, 머리로 알지 못하고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는 것, 마음은 있지만, 머리와 입술이 열리지 않는 것 등 지,정,의 전부 믿지 못한다면 진정 믿음이라 하기 어렵다. 아는 만큼 믿게 되고, 경험한 만큼 믿게 되는게 믿음인 것 같다. 우리 삶 가운데 진정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나 자신의 낮아짐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그릇으로 빚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변심에 대한 책망(34:12~16)


알고 짓는 죄가 모르고 짓는 죄보다 형벌이 무겁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 사람을 종으로 삼은 경우 7년째 되는 해에는 자유케 하라는 규례를 지키지 않았던 선조들과는 달리, 규례를 지키고자 한 유다 백성은 칭찬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숨을 돌릴 틈을 얻자마자 예전 상태로 되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집에서, 또 하나님 앞에서 세운 언약을 너무도 쉽게 저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이익을 따르며 하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내 이름을 더럽혔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변질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약속드리고 지키지 못한 일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은 늘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합니까?



언약을 어긴 대가(34:17~22)

사람 사이에서 약속을 어기면 불이익을 당하듯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는 자는 징계를 당합니다. 동족 히브리 종에게 ‘자유’를 선언하기로 한 언약을 유다 백성이 지키지 않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유’를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자유’는 진노를 상징합니다. 곧 그들을 칼과 염병과 기근에 붙여 열방으로 흩으신다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언약을 맺을 때 동물을 반으로 가르고 그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이는 어느 쪽이든지 언약을 어기면 그 짐승과 같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목전에서 맺은 언약을 저버린 유다의 지도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백성 모두를 바벨론의 손에 붙이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 앞에서든 늘 진실해야 하며, 말한 것은 끝까지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쉽게 약속했다가 위기가 사라지면 쉽게 저버리지 않습니까? 오늘 하루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