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56년. 선교를 위해 에콰도르 소재의 아마존 정글을 방문한 짐 엘리오트와 네이트 세인트 등의 젊은 선교사들 다섯명이 원주민인 와오라니 족의 밍카야니에 의해 모두 살해당한다. 이어지는 여러가지 사건들은 선교사들의 가족들 뿐 만 아니라 밍카야니 자신과 그의 가족들의 삶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데...
"나의 사명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발자욱을 남기는 것이다."
짐 엘리어트(Jim Elliot)은 미국의 유명한 휘튼대학에서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젊어서부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영혼 구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에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남미에 아우카 족이라는 부족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정글 속에서 사는 부족으로 그 수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부족은 얼마나 사나운지 백인만 보면 죽인다고 합니다. 그 동안 그 부족과 접촉해서 살아 남은 백인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살인 부족이라는 악명을 떨칠 정도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곳엔 그 어느 선교사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짐 엘리어트는 '내가 그들을 찾아 가야겠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길 원하시는데 그들이 예수 믿으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을 위해 내가 그들을 찾아 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그들에게 보내달라고 6년 간 기도했습니다.
이들의 죽음이 헛된가?
1992년 9월 23일자 국민일보에는 한 가지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습니다.
비록 이 신문에서는 가볍게 지나치고 있었으나, 이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기사는 '순교의 땅에서 이룬 선교 기적'이라는 것이었는데, 에콰도르 오지 마을인 '티네노'에서 감격적인 신약성경 봉헌 예배가 드려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남미의 에콰도르는 복음의 빛을 받지 못했던 나라인데, 특히 에콰도르 열대 우림지역에 살던 아우카족(Auca)은 복음에 대해 가장 저항적인 부족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미의 인디안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부족으로 외부 세계와의 어떤 형식의 교류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에콰도르에서 오랫동안 선교사로 일했던 데이브 쿠퍼(Dave Cooper)는 아우카족이 수없이 많은 외부 사람들을 살해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스페인의 탐험가들, 천주교의 신부들, 금광이나 석유탐사가 등 많은 사람이 아우카족의 희생물이 되었다. 아마도 수십 명, 수백 명이 이들에 의해 살해되었을 것이다. 아우카족 지역에서는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이런 지역에서 아우카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뜨거운 열망을 가진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지만 이들과 접촉하고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선교 역사에 큰 기여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상당한 위험이 상존했지만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던 이들은 네이트 세인트(Nate Saint), 로저 유드리안(Roger Youderian), 피트 플레밍(Pete Fleming), 에드 멕컬리(Ed McCully), 그리고 짐 엘리어트(Jim Eliot) 등 5사람의 젊은 선교사였습니다.
이들 청년 선교사들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믿고 '믿음으로'아우카 인디안 선교계획을 추진했는데, 이것을 보통 '아우카 선교작전(Operation Auca)'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1955년 이 선교계획을 수립하고 그 해 9월부터 아우카족과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아우카족은 외부인에 대한 무서운 증오심을 가진 부족으로서 외부인의 사지를 토막내 죽이는 잔인한 습성이 있었기에 섣불리 접촉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이들 부족에게는 배반 혹은 배신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외부인에게 호의를 표하며 환영의 웃음을 보내지만, 갑작스럽게 덤벼들어 살해하는 일이 있었으므로 이들과 접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주의를 요했습니다.
1955년 9월, 이들 젊은 선교사들은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아우카족의 땅을 비행하면서 저들과 교제를 시도하였습니다.
네이트는 비행기를 조종하였고, 다른 선교사들은 식품, 의약품, 옷가지 등이 든 선물 보따리를 내려 주면서 우호적인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첫 접촉을 한 지 약 3개월이 지난 1956년 1월, 선교사들은 이 아우카족들의 땅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아우카족을 믿어서는 안된다. 저들은 웃음을 띠고 나타나지만 별안간 살인자로 돌변한다"는 충고가 있었지만, 이제는 염려할 단계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지난 3개월 동안 나눈 교제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신뢰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우카족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기꺼이 바치겠다"는 이들의 선교적 열정이 있었으므로 이들과의 접촉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곳에 착륙한 지 얼마 안된 1월 8일, 이들은 무참하게 살해되었고, 그간의 모든 선교 노력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들 선교사들이 피살되고 약 일주일이 지난 후 정찰대에 의해 부패된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이들의 몸에는 화살이 그대로 꽂혀 있었습니다.
이들의 희생은 세계적으로 경악스러운 일로 받아 들여졌고, 그들의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희생은 새로운 복음역사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아우카족에 대한 선교적 관심을 고조시켜 주었습니다.
이때 피살된 5명의 선교사 중 한 사람인 짐 엘리어트는 휫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수제였고, 오랜 자기 연마와 절제를 통해 선교사의 길을 준비해 왔는데 겨우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이곳에서 피살되었던 것입니다.
다섯 젊은이들이 무참히 살해된 이후 첫 희생자의 가족들에 의해 또다시 이 지역 선교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짐 엘리어트의 젊은 아내인 엘리자베스 엘리어트와 네이트 세인트 선교사의 여동생 라헬 세인트 등은 남편과 오빠가 무참히 살해된 이 지역으로 들어갔고, 저들의 피나는 희생과 헌신의 열매로 차츰차츰 복음의 빛이 비춰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다섯 사람의 선교사가 피살된 지 36년이 지난 1992년 6월 11일, 이곳 와오라니 우림지역에 외딴 마을 티네노에서는 감격적인 신약성경 봉헌예배가 엄숙하게 드려졌던 것입니다.
다섯 사람의 선교사의 죽음이 결코 무의미한 죽음은 아니였습니다.
36년이 지난 후에야 이들 다섯 선교사들의 희생이 결실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것은 충격과 감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일보 기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1992년 6월 11일 와오라니 우림지역의 외딴 마을 티네노에서는 감격적인 신약성경 봉헌예배가 드려졌다.
75명의 와오라니 인디안 기독교인과 수명의 성경번역선교사, 봉헌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온 손님들이 함께 한 이번 예배에서는 와오라니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을 와오라니 기독교 지도자가 잔잔히 읽어 내려갔다.
이번 예배에 참석한 와오라니 인디안 기독교인들 가운데 3명은 5명의 선교사 살해에 가담한 사람들로 이들은 현재 와오라니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선교의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신 그 뜨거운 하나님의 가슴이 선교의 동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