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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2008. 11

이제는 안심하라

사도행전 27:21~32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와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29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30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31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32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리니라

영화 Dust가 생각난다. 이 영화에서 이단 여선지자가 등장한다. 위험이란 속성을 교묘히 이용해서 하나님을 핑계로 자신을 신격화하는 존재로 나타나는데 그렇다면 배에서 도망하려 했던 사공들이 생각하는 바울의 모습과 우리가 영화로 봤던 그 이단사람과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생각으론 우리가 영화를 통해 바라봤던 모습이나 선원들이 생각했던 바울의 모습이나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땐 거의 비슷한 구조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울은 이미 이 위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영화에서는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위험을 알리지만, 그것은 그저 추상적은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시킬 뿐이었다. 바울은 아주 구체적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바울은 하나님을 드러낸다. 영화에서는 그 자신을 드러낸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바울은 주의 사자가 함께 하였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괴물들이 함께했다.
사람들이 도망가고자 하는데는 그 이유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선장이 맘에 안들었을 수도 있고, 광품을 자신들 혼자서만 피할려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바울의 모습이 맘에 안들어서 일 수 도 있다. 분명히 이유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선원들은 바울을 신뢰하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이기에 우리가 결정할 부분이고 그 책임은 철저히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지만, 우리를 그저 방치하진 않으신다. 그냥 두진 않으신다. 반드시 붙잡아 주신다. 마치 바울의 말을 통해 선원들이 절대 탈출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분명히 잡아두신다. 만일 선원들이 탈출을 하였더라면 광풍에 의해 분명 죽었을 것이다. 
우리가 붙잡힌 삶을 살게 된 것에 감사하길 소망한다.